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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주는 교훈 [제1419호]
      발행일  2023-03-07
    KIMA Newsletter [제1419호,2023.03.07] 625 전쟁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준 교훈.pdf



                                           6·25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 출처 : Morning Calm Weekly Newspaper Installation Management Command, U.S. Army Flickr(CC BY-NC-ND 2.0), manhhai Flickr(CC BY 2.0)

    지난 2월 25∼26일 뉴욕타임스 국제판은 “점차 장기전(protracted war)으로 진입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1953년 7월 27일 휴전에 합의한 6·25 전쟁의 교훈을 통해 종전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한 미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정치학 세르게이 라첸코(Sergey Radchenko) 교수의 논단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우선 6·25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사성(like)이 없지만, 전쟁을 어떻게 종식해야 하냐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호연관성(relevance)과 교훈(lesson)이 있다.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지금까지 대학살(canage)이 나타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전을 종식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6·25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수많은 민간인 피해와 시설물 파괴 등을 보인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6·25 전쟁에서는 약 3백만여 명의 사망자와 부상자를 발생시켰으며,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도 수많은 사망자와 시설물 파괴가 발생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6·25 전쟁에서는 1953년 휴전에 합의하기 이전까지 어느 한쪽도 휴전을 원치 않았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도 마찬가지이며, 러시아·우크라이나 모두 장기전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구소련 지원 아래 북한 김일성 정권의 남침으로 시작됐다. 전쟁 초기 북한은 순식간에 남한 대부분 영토를 점령했으나, 유엔(UN)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압록강 부근까지 밀리게 됐다. 이에 구소련은 동맹국인 중국에 북한을 지원할 것을 요청했고, 중국이 의용군이라는 명분으로 참전해 기존 북한 영토를 대부분 수복하고 대치함으로써, 6·25 전쟁은 38선 중심의 국지전이라는 새로운 전쟁 양상으로 발전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도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어, 지난 1년간의 전쟁이 또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러시아는 핵무기 사용을 들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과 나토를 위협하고 있다.
    6·25 전쟁은 2가지 잘못된 전략적 배경하에 발발했다. 첫째, 1950년 1월 12일 미국 딘 에치슨 국무장관은 미국의 동아시아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한다고 선언해 구소련이 한국을 침공하려는 북한을 지원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전략적 메시지를 줬다. 즉, 구소련에게 북한 김일성 정권을 지원하면 이익이 될 것이라는 잘못된 확신을 줬으며, 이는 6·25 전쟁의 원인이 됐다.
    둘째, 1950년 2월 14일 구소련과 중국의 동맹 조약 체결은 구소련에게 북한 김일성 정권이 6·25 전쟁을 일으키면 중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줬다.
    이처럼 6·25 전쟁의 원인이 된 2가지 잘못된 메시지가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보며, 1953년 휴전을 맞이한 6·25 전쟁과 같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여한 국가들이 장기전으로 진입하도록 하는 여러 장애 요인들을 극복하는 대안(alternative)을 강구해야 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김일성 정권이 남침하자 유엔은 바로 유엔군을 구성하고 6·25 전쟁에 개입해 구소련과 중국을 당황시켰다. 유엔군의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구소련은 중국에게 6·25 전쟁 개입을 요청하는 사태에 이르렀으며, 중국 마오쩌둥은 동년 10월에 참전 결정을 내림으로써 1950년 6·25 전쟁을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도록 했다.
    하지만 당시 중공군의 6·25 전쟁 개입은 충분한 후방군수 지원 및 전력 보충 등을 고려하지 않은 무모한 군사작전이었으며, 이는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군이 후방 군수지원과 전력 보충 계획 없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과 유사한 모습이었다. 특히 1950년 6·25 전쟁에서 중공군은 우세한 유엔군의 공중작전과 해상작전에 직면해 일종의 게릴라전에 준한 군사작전만을 수행함으로써 6·25 전쟁 전세를 바꾸는 데 실패했다.
    이에 따라 1951년 여름부터 6·25 전쟁은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선과 유사한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양국 간 전쟁포로 문제 등이 휴전으로 가기 위한 걸림돌로 제기되는 등 여러 문제가 나타났다.
    당시 6·25 전쟁 당사국과 참가국들은 휴전에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고, 전쟁 이전 상태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러한 전쟁 목표가 장기전으로 가면 모두에게 불리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53년 3월 구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사망은 장기전으로 진입하려던 모습을 보이던 6·25 전쟁을 휴전에 이르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됐고, 7월 27일 휴전이 합의돼 현재까지 국제법과 기술적으로 종전(cease fire) 상태에 있다.
    그러나 1953년 이후 북한은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종전 합의를 위반하는 다양한 행보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으며, 이제는 3대에 이르는 북한 김씨 정권 유지라는 초유의 독재정권을 만들고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요구하며, 종전시에 불리함을 극복하려는 불순한 행위와 국제법을 무시하는 행위를 보이고 있다.
    최근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 구축에 반대하며 전략적 협력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 신냉전 도래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중국 시진핑 주석은 러시아의 무기 지원 요청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중재자를 자처하겠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지향하는 매우 부정적인 모습이자, 이들이 6·25 전쟁의 교훈을 배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분명한 사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에 진입하면, 1950년 6·25 전쟁과 같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이를 지원하는 모습을 보이는 중국이 어떠한 국가 이익도 얻을 수 없다는 것과 6·25 전쟁과 같이 무고한 민간인과 시설물 피해만 늘어 국제사회의 비난만 받을 것이라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 출처 : The New York Times International Edition, February 25∼26, 2023,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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