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년 전, 2018년 9월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에 세 번째 정상회담이 열렸다. 9월 19일에는 평양공동선언과 그 부속문건으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이하 9.19 군사합의)가 채택되었다. 당시 정부는 9.19 군사합의에 따라 일체의 적대행위가 중지된 만큼 한반도에서 더이상 군사적 충돌이나 전쟁은 없을 것처럼 홍보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지난 6월 김여정 명의 담화 등을 통해 남북관계를 대적관계로 전환하고 결별을 통보했다.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더니 9.19 군사합의 파기 불사도 예고했다. 북한군 총참모부는 6월 17일 대변인을 통해 ① 금강산 관광지구 및 개성공단에 병력 진출, ② 접경지 군사훈련 재개, ③ 감시초소(GP) 복원, ④ 대남전단 살포라는 소위 4대 군사행동을 발표하고 일부 행동을 개시했다. 물론 이는 김정은의 지시로 잠정 보류(6.23)되었다. 이 시점에서 왜 이런 상황이 오게 되었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9.19 군사합의의 성격과 의미, 이행 실태, 향후 전망 및 과제에 대해 정리해 보고자 한다.

9.19 군사합의 성격과 의미

9.19 군사합의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독특한 성격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형식 면에서 본다면 이전 군사합의들과는 달리 남북 정상 간 합의문의 부속 문서 형식으로 채택되었다는 점이다. 과거 1990년대 남북기본합의서나 불가침 부속합의서는 쌍방 총리가 합의했고, 남북 국방장관 간에도 두 차례 합의가 있었지만, 9.19 군사합의는 양 정상의 공동선언 일부로 포함되었고, 양 정상이 보는 앞에서 남과 북 군의 수장이 합의서에 직접 서명하는 절차를 거쳤다. 아울러, 동 합의는 제목에 명시된 바와 같이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이 합의한 4.27 선언 군사분야 이행방안을 담은 문건이기도 하다. 즉, 양 정상 간 합의서의 부속문건인 동시에 구체적인 이행을 위한 목적의 합의서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이는 이전의 합의들과는 달리 양 정상의 의지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그 이행의 가능성과 기대감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내용 면에서도 보면, 동 합의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평가가 공존하지만 1조부터 쌍방 간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데 합의한 점으로 본다면 1953년 7월 27일 합의한 정전협정의 정신을 계승한 합의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이와 함께 각종 군사적 충돌방지 조치로서 군사분계선 일대 훈련제한, 해상 완충수역 및 비행금지구역 설정,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우리 측에게 유·불리 여부를 떠나 정전협정의 이행이라는 관점만으로 본다면 나름 의미있는 합의라 할 수 있다. 아울러, 그동안 남북간 기존 군사합의서 이행을 재가동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6.4 합의서를 재확인하고 전면적으로 복원, 이행한다는 데 합의했다. 동 합의서는 2004년 2차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타결한 것으로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피격도발에 따라 이행이 중단된 바 있다. 유해 공동발굴문제, 공동어로 및 평화수역 설정, 3통 보장,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의 내용들도 이전 군사회담에서 합의했던 사안들이다. 특히, 동 합의에서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로 군사당국자 간 직통전화 설치,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가동 등은 1990년대 남북기본합의서 불가침 분야 합의사항들이다.

이렇듯 9.19 군사합의는 우리의 재래식 군사적 우위를 너무 많이 양보해 줬다는 제반 비판에도 불구하고 형식 면이나 내용 면에서 볼 때 제대로만 이행되었다면 상호 적대행위를 금지하고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며 나아가 신뢰구축과 군비통제를 본격 추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즉, 정부가 추진하는 평화프로세스를 추동할 수도 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9.19 군사합의 이행실태

9.19 군사합의는 짧은 전문과 6조 22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 이행실태를 살펴본다면 전체조항 중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이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북한은 지난 6월 동 합의 파기를 운운하면서 이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동에 돌입했던 사례도 있다. 이뿐 아니라 동 합의는 그동안 북한 측이 우리 측의 각종 훈련이나 신형무기 도입에 대해 동 합의서 제1조 위반을 운운하면서 악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조항별 이행실태는 어떠한지 점검해 본다.

제1조에 담긴 적대행위 중지를 위한 조항은 비교적 이행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관련 문제들을 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여 협의 해결하기로 하였지만 동 기구는 가동조차 되지 않고 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군사연습 중지나 정찰금지, 포사격 금지, 비행금지 등 북한 측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조항들은 대체로 이행되고 있다. 다만, 김정은은 2019년 10월 창린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직접 사격지시를 함으로써 동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했으며, 금년도 5월에는 북한 측 GP에서 우리 측 GP로 기관총격을 가함으로써 동 합의를 위반한 바 있다. 우리 측이 항의했지만 북한은 일언반구 해명도 없다. 1조 ⑤항에서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상시 연락체계를 가동키로 했지만 북한은 지난 6월 모든 연락 채널을 단절한 상태이다.

제2조는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어나간다는 합의이다. 2018년 감시초소를 전부 철수하기 위한 시범적 조치로서 11개 GP를 폭파했다(이중 1개소는 보존키로 합의). 그리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는 검증까지 진행되었다. 공동유해발굴은 지뢰 제거와 통로구축까지는 이행되었지만 실제 유해공동발굴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역사유적에 대한 공동조사 및 발굴 지원은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이다.

제3조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군사적 대책을 취해 나간다는 합의이다. 하지만, 이는 협의도 개시하지 못했다. 설사 협의를 시작했다 하더라도 NLL 관련 입장 차이로 한 발짝의 진전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6.4 합의서 이행 재개도 북한의 연락 채널 단절로 사실상 이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제4조는 남북교류협력 및 접촉 왕래 활성화에 대한 군사적 보장대책 관련 조항이다. 이 조항의 경우 한강하구 공동조사를 마친 후 지도를 북측에 넘겨준 것 말고는 별 진전이 없다. 오히려 긴 장마와 호우피해가 막심한 상황에서 북한은 황강댐을 무단 방류함으로써 우리 국민에게 큰 위협과 실망감을 주었다. 동 합의는 이럴 때 활용이 되었어야 하지만 한마디로 무용지물이었다.

제5조는 상호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강구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는 9.19 군사합의 중 우리 측 기대가 가장 컸던 조항이다. 즉, 군사적 신뢰구축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군사당국자 사이 직통전화 설치 및 운영, 군사공동위원회 구성 및 운영과 관련된 문제들 또한 전혀 진전이 없다. 5조 ③항에는 남북 군사당국 간 채택한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하며, 그 이행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 평가하기로 하였지만 이 또한 말뿐이었다.

문제점 진단 및 평가

9.19 군사합의가 타결된 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를 가져온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한마디로 말한다면 ‘북한의 이행 의지 부재’라 할 수 있다. 즉, 북한은 동 합의를 이행하려는 진정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2018년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를 사변적으로 발전시키겠다고 공언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 차례 이를 재확인했다. 동년 2월 여동생 김여정을 특사로 보내 문 대통령을 초청하는 친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후 세 차례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4.27 판문점 선언, 9.19 평양 선언이 나올 때만 하더라도 이번에는 과거와는 달리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북한 핵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실제로 김정은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문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핵 없는 한반도, 전쟁 없는 한반도”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도 있다. 많은 국민들은 그의 이 말을 믿고 환호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흐른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그의 말들에 진정성이 담겨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남북관계는 파탄나고 북한 핵 문제는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합의라 하더라도 이행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1970년대 초반 이후 남과 북은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합의들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7.4 공동성명(197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2년), 6.15선언(2000년)과 10.4선언(2007년)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합의들이 제대로 이행되었다면 군사적 신뢰구축은 물론이고 평화적 통일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지키지도 않을 합의에 호응했으며, 파기 운운하면서도 실제 파기하지 않는 것일까? 왜 이행을 하지 않는 것일까? 사실 9.19 군사합의 내용 중 1조의 내용은 북한이 오랫동안 바라왔던 조치들이었다. 정찰역량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북한으로서는 군사분계선 일대 비행 금지구역을 설정하여 우리의 정찰역량을 제한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매우 유리한 것이다. 거기에다 서해 5도를 포함한 완충수역을 설정하여 포사격과 훈련을 금지시킴으로써 서해 5도의 방어역량 약화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군사적 충돌시 작전단계를 세분화시킴으로써 북한의 국지 도발시 우리측의 대응을 지연, 약화시키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남측과의 대화재개를 통해 개성공단의 재가동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경제적 실익을 기대했다. 그렇지만 대북제재로 이것이 여의치 않자 군사 분야에서나마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이 9.19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공언하면서도 이를 미루면서 완전 파기하지 않는 것은 나름 어렵게 얻은 이익을 원점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측면이 있다. 특히 9.19 군사합의의 근거조항은 4.27 선언인데 여기에는 2018년 5월 1일부 확성기 방송 등 심리전 중지를 포함하고 있다. 만일, 동 합의를 파기한다면 남측의 대북심리전 방송 재개를 막을 명분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합의 이행에 소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군사적 신뢰구축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신뢰구축이란 상호 대화와 교류의 확대를 통해 투명성을 제고시키는 것이기에 폐쇄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이를 수용시 체제와 정권 유지에 부담을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향후 전망 및 과제

앞서 평가한 내용을 근거로 본다면 앞으로도 북한이 9.19 군사합의 이행에 적극 나설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만일 남북관계가 더욱 악화되거나 자기들이 원하는 상황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면 자기들이 얻는 이익에 매달리기보다는 남측에 더욱 큰 충격을 줄 목적으로 9.19 군사합의 파기를 공식 선언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9.19 군사합의와 관련하여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9.19 군사합의의 성실한 이행을 북측에 촉구해야 한다. 북한이 합의를 위반하거나 이를 부당하게 악용하면서 우리를 비방한다면 단호하게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북한이 끝내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대남 군사도발에 나선다면 동 합의를 유지하는데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도 동 합의 무효를 선언하고 즉각 응징에 나서야 한다.

둘째, 강력한 한미공조와 연합억제력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의 협상력은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군사역량이다. 북한이 핵을 내려놓지 않는 한 진정한 평화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현 상황에서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핵 포기를 강요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강력한 대북제재와 억제력 유지로 핵을 껴안고 있으면 생존이 불가하고 가지고 있어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

셋째, 정전협정을 준수하고 체제를 복원시켜야 한다. 정전협정은 전쟁재발 방지를 위해 적대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9.19 군사합의가 없더라도 정전협정만 잘 지켜도 충돌은 없을 것이다. 북한을 향해 정전협정 준수와 백지화 선언 철회를 요구해야 한다. 정전협정을 준수해야 9.19 군사합의도 잘 지켜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