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운택 예비역 장군이 국방일보에 기고한 "모병제가 안되는 4가지 이유"입니다.

최근 일부에서 향후 10년 내 다가올 인구절벽에 대비해 병력을 현재의 절반 수준인 30만 명으로 줄이고, 절감되는 예산 4조 원으로 월 200만 원을 지급하는 모병제를 도입하자고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모병제는 안보 위협이 크지도 않고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나 시행할 수 있는 제도다. <표1> 안보 위협이 심각하고 가용인구마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현실적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실상을 잘 모르는 국민이나 병역의무 대상자들에게는 솔깃하게 여겨질 소지가 많기에 모병제의 시행 가능성과 시행 시 문제점을 적시해 보고자 한다.

먼저, 병력을 30만 명으로 줄일 수 있느냐의 문제다.

모병제는 현 61만 명의 병력을 30만 명(간부 12만, 병 18만)으로 줄이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120만 상비군을 보유한 북한 정권과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안보 상황에서 30만 명으로 감군하자는 것은 위험천만한 주장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통일과정에서 북한지역 안정화 작전이나 통일 이후에도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국익을 보호하고 자위력을 확보하려면 최소 50만 명의 군대를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특히 병을 18만 명으로 줄이려면 육군은 북한군 특수부대 12만 명보다 적은 10만 명 이하로 운영해야 한다. 그러나 10만 명으로는 GOP 경계병력조차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에서 적전 무장해제나 다름없다.

▲ 현재 61만 명(간부 18.5만, 병 42.5만)에서 31만 명 감축 → 향후 30만 명(간부 12만, 병 18만)
▲ 북한: 120만 상비군(특수부대 12만) → 최근 핵 개발 및 미사일 위협 증가

▲     © 국방일보

둘째, 병 18만 명을 모병으로 채울 수 있느냐의 문제다.
정부의 병력수급 전망에 따르면, 2020년 이후 병력 가용자원은 17만 명 정도로 예측된다. 모병으로 18만 명을 운영하려면 4년 복무 병사를 매년 4만~5만 명씩 모집해야 한다. 이는 가용자원의 26%에 해당한다. 즉, 4명 중 1명꼴로 지원해야 충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의무복무제도 아래에서도 갖은 방법으로 병역을 꺼리려는데, 안 가도 되는 군대를 월 200만 원에 4년짜리 계약직이나 다름없는 모병에 얼마나 지원할 것인지 의문이다. 이는 현재 의무복무 후 추가복무 시 월 200만 원을 지급하는 유급지원병 제도도 연간 목표 인원 6000명의 절반도 모집하기 어려운 실태를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너무나 현실을 모르는 섣부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셋째, 감군에 소요되는 예산 문제다.
모병 인원 18만 명의 봉급을 지급하는 데 소요되는 4조 원은 감군으로 절감된 예산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06-20’ 군 개혁의 경우, 61만을 52만으로 9만 명 줄이는 데 필요한 추가전력 확보와 부대개편에만 67조 원이 들어간다. 따라서 단순계산으로 31만을 줄여 30만으로 개혁하자면 전력보강비만 무려 230조 원의 추가예산이 필요하다. 또한, 인력운영비도 200만 원으로 모집이 안 되면 25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올려야 하고, 월 100여만 원에 불과한 초급간부들의 봉급도 그 이상 주어야 하는 등 연쇄적 인상이 불가피해진다. 연금과 퇴직금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엄청난 예산이 추가로 소요될 것이다. 우리의 국가재정과 국민부담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이 소요될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표2>
끝으로, 국민 안보의식 약화의 문제다.
국민개병제하에서 젊은이의 90%가 국방의무를 이행하면서 우리의 안보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안보 위협이 적은 서방국가들처럼 군에 안 가는 사람이 대다수인 사회가 되고, 극소수 직업군인만이 안보를 책임지는 사회가 된다면 국민 안보의식은 지금보다 현저히 약화되고 이완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남북대치 상황에서 안보의식의 이완은 앞서 언급한 문제들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모병제는 우리의 안보 현실과 여건을 도외시한 비현실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안보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병역제도이기에 앞에 언급한 시행상의 문제들을 면밀하게 따져보지도 않은 채 섣불리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위험천만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안보 위협이 적은 국가들처럼 언젠가는 모병제로 전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독일이 통일 후 20여 년이 지나서야 모병제로 전환할 수 있었듯이 지금은 시기상조의 문제이며 가능하지도 않다. 자칫 소모적 논란과 안보 혼란만 부추기고 국론 분열만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임 운 택 (예)육군소장·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